들어가는 곡. 오늘도 노래를 먼저 틀어주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땐 보통 당황하기 마련이다.

특히 외국에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건 날벼락을 맞는것과 같은 것이리라.




2월 4일 아침.

일곱시부터 본격적으로 아이슬란드 남부 투어가 시작될 예정이었으니

 여섯시에 일어나 간단히 조식을 챙겨먹었다.


짐은 전날에 다 꾸려두었으니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 프론트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어제 봤던 토르 형님 대신 다른 사람이 카운터에 있기에 내심 안도하며 체크아웃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 사람 또한 기골이 장대하여 나의 마음을 요란하게 하였다.

체크아웃 문서를 작성하면서도 이 문서가 을사조약을 맺는것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으나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난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했다.


체크아웃이 완료된 시점은 아침 여섯시 오십분.

십여분의 시간이 남아 호텔 로비 소파에 앉아 양껏 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 동양인 한 분이 나와 지인을 번갈아 보며 지나갔다.

같은 동양인을 보았기에 그려러니 하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밀린 웹툰과 페북을 하며 고국의 소식을 접하던 그 시간.

그렇게 일곱시가 되고, 일곱시 십분이 되고, 일곱시 반이 되었다.

처음에 좀 늦나 싶어 여유롭게 기다리던 나와 지인은

일곱시 반이 넘어가자 그때부터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여덟시가 되고 나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상황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지인은 투어를 예약했던 곳에 전화를 걸어-통역 노예인 나를 바꿔주었고-나는 그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오늘 강한 눈보라로 인한 기상 악화로 투어가 취소되었음 ㅃㅃ"

나는 순간적으로 몸에서 열이 확 났다.

"어떻게 이걸 알려주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처리하느냐?"

상담원은 머쓱한 말투로 답했다.

"메일 보냈잖아? 확인 안해봤음?"

"뭐라구요?"

그때 지인은 뭔가 짚이는게 있었는지

메일함을 열어 메일들을 수신했다.

그리고 우린 2월 4일 새벽 세시에 날아온 메일에 주목했다.


'강한 눈보라를 동반한 폭풍이 몰아칠 예정이니 금일 투어는 취소합니다.

혹시나 전 일정에 대해 환불을 원한다면 해당 답신을 해주세...'


어이가 없었다.

나는 강하게 그 상담원에게 따졌다.

"누가 대체 새벽 3시에 메일을 열어 읽는단 말인가!

적어도 텍스트 메시지라도 보내줬다면 아니 이런 긴급한 사항이면 전화를 했어야지 않는가?"


상담원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새벽엔 다들 자니까 메일을 보낼수밖에 없었어요."

변명도 참 궁색하다. 그러나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어쨌든 오늘 투어는 취소되었으니..

"아무튼, 이렇게 되면 우리가 택할수 있는 옵션이 뭐가 있나요?"

"오늘 일정을 제외한 나머지 일정 진행 혹은 전액 환불이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고려해보고 연락하겠습니다."


나와 지인은 허탈했다.

몇달전부터 예약한 투어가 새벽 3시에 보낸 메일 한통으로 취소되었으니.

게다가 이 눈이 몰아치고 있는 레이캬비크 시내에서 달리 갈곳도 없었다.

다행히 내일부터는 기상 조건이 좋아져서 투어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오늘

다시 오지 않을 2016년의 2월 4일은

어느 누가 보상해주는가?

가뜩이나 오늘 가는 투어는 아이슬란드를 간다면 반드시 들려야 할

실프라 열극 , 굴포스 폭포, 그리고 비트나요쿨 얼음동굴.

소위 골든서클이라고 불리는 3대장이었는데, 이걸 고스란히 놓치게 된 것이었다.

울고싶었다.

지난날 보았던 오로라의 희열도 잠시, 이런 상황에선 딱히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잠시 고민을 하고 있었을 무렵

나는 찬 공기나 쐬자며 호텔 바깥에 잠시 나와 부셔진 멘탈을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기왕 이렇게 된거 핫도그나 더 먹을까.

레이캬비크 시내를 돌아다니며 스냅을 찍을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저기.. 혹시 한국분이세요?"

한국말이다.

나는 놀라서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아까 잠깐 마주쳤던 동양인 분이었다.

"어...? 아까 그 분이셨구나!"

"네 하하 아까부터 지켜봤었는데! 왠지 한국분들 같으셔서요!"

고국에서 8000마일 떨어진 이 황량한 아이슬란드에서 만난 또 다른 한국인.


"일부러 들으려는건 아니었는데 날씨때문에 투어가 취소되었다고 하던것 같은데

괜찮으시면 저희랑 동행하실래요? 저희도 투어 취소되긴 했는데 차량으로 직접 가보려구요!"


이럴수가.


맨 처음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풀리나? 할 정도로 너무나 우연한 시간에, 우연한 장소에서 우린 구세주를 만났다.

내가 대답을 머뭇거리는 사이, 지인이 선수를 쳤다.

"정말요?! 그러면 저희야 완전 감사하죠!!"





짐을 호텔 프론트에 잠시 맡겨두고

우리는 그의 SUV 차량에 올랐다. 

차량엔 그의 아내분께서 타고 계셨다.

우리는 이런 날씨에 동행을 제의해준 그와 그의 아내분의 호의에 감사를 표했고 

약간의 어색함이 이어진 뒤에 여행이야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 부부는 파리에서 생활을 하다 이번에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오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처럼 오로라를 보는게 목적이었다고 했는데, 차량을 렌트해서 돌아다닌단다.

오늘이 우리처럼 여행 첫 날이었는데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인해 일정이 취소되었고

호텔에 그냥 머물려다가 우리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걸었다고 했다.

우리로써는 그저 하늘에서 내려준 동앗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출발 당시에도 기상은 매우 안좋았기에, 우리 일행은 갈 곳을 미리 정하기로 했다.

물론, 그들도 우리도 사진찍는것을 좋아했기에 멋진 광경이 나오면 사진을 찍기로 하고서!

우선 가장 가까운 팅크베틀리르로 향했다.

팅크베틀리르까진 대략 한시간 정도 여정이었는데

가다가 중간에 눈발이 잦아든 틈에 내려 아름다운 사진들을 찍었다.


검은 아스팔트가 흰색 얼음과 눈에 덮혀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나는 한 사진은 흑백으로 찍고 싶었다.

마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그 모습에 초연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쓸쓸하고, 황량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아름다운 모습.

나는 그렇게 아이슬란드의 길에 빠져들었다.





한시간즈음을 달려 도착한 팅크베틀리르.

아메리카 대륙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땅이라고 한다.

그리고 초기 아이슬란드인들이 의회가 있었던 땅이라고도 한다.

당시엔 눈이 많이 내렸던 터라 의회 터를 볼 수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암석지대와

듬성듬성한 침엽수들과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빙하호를 보면서

이 광활한 대지에서 한번 미친듯 뛰어다니며 자유를 토해내고 싶었다.




다음 방문지는 게이시르(간헐천) 이었는데

팅크베틀리르를 떠나온 이후로 점점 날씨가 안좋아졌기에 작은 휴게소가 있는 그곳에서

잠시 상황을 보면서 여행을 계속 하기로 결정했다.

실프라에서 한시간 반 정도 달려가야 하는 거리였기에

우리는 중간에 휴게소에 들려 과자며 핫도그며 사서 기력충전을 했다.

물론 그 어마어마한 북유럽 물가를 몸소 체험하면서.

Lays 감자칩 한 봉다리에 450크로나-4500원을 받는걸 보며 그저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게이시르에 도착했다.



게이시르로 가는 길엔 여러 작은 간헐천들이 있었고, 혹시나 하는 위험에 대비해 저렇게 안전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천천히 걸어가며 능선을 따라 올라갔다.


작은 게이시르.

진짜 게이시르.


게이시르는 10분에서 15분 단위로 물을 쏟아낸다고 하는데

때마침 우리가 갔을때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근데 훼이크였다.


우리를 비롯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우오우오우오우오 하면서 멋지게 솟구칠 물줄기를 기대했지만

게이시르는 그런 우리를 보며 비웃었다.


그리고 20분 정도 기다렸는데, 아무래도 도통 물을 뿜어낼 조짐이 보이질 않았다.

어느새 눈보라가 조금씩 흩날리기 시작하자, 이젠 가야한다고 슬슬 하산하려고 할 때였다.


이번엔 제대로 터졌다!


대략 8미터 정도 되는 물줄기가 터져나오는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속된 표현으로 지릴뻔 했다. 정말이다.

게이시르에서 나오면서 온천천이 흐르는 개울에 잠시 섰다.

아름다운 능선, 간헐천 그리고 온천천

사진으로 봐오던 그 간헐천을 직접 눈으로 보니 그 감격이 더 했다.


게이시르에서 나오자마자 우리에게 동행을 제의했던 그가

한 아이슬란드 사람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아무래도 이거 심상치 않았다.

그는 약간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거 눈폭풍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데요.."

눈폭풍.

이런 날씨에 도로에서 꼼짝없이 조난당할판이었다.

남동쪽으로 더 내려갈것인지 아니면 레이캬비크로 복귀를 하는지에 대해

잠시 고민을 하던 우리는 그래도 굴포스는 꼭 가봐야지 않겠느냐며 의기투합했다.


게이시르에서 굴포스까지는 대략 20분정도 되는 거리였다.

그리고 우리가 굴포스에 도착했을때, 눈폭풍도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눈폭풍의 영향으로 굴포스를 보려는 사람은 몇 없었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폭포이자 아름다운 폭포라고 하는 굴포스.

폭포 뒤에 바이킹들이 보물을 숨겨놨다고 해서 황금의 폭포라고 불리는 굴포스.

폭포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폭포의 물줄기가 얼음화 되어 나와 카메라를 때렸다.

눈을 뜨고 갈 수가 없을정도로 그 위용은 대단했다.

못해도 수백미터의 물줄기들이 그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태어나서 가장 큰 폭포를 보면서 나는 온 몸이 전율하는걸 느꼈다.

아, 대자연이란 이런거구나.





눈폭풍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우리 일행은 레이캬비크로 돌아갈 길을 서둘렀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도로 사정을 알아보던 중 조금 안 좋은 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눈폭풍이 우리가 왔던 길을 그대로 덮쳐버려 왔던길로는 레이캬비크로 갈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게이시르쪽으로 빠져나와서

35번 도로를 타고 셀포스 마을까지 내려올수밖에 없었다.

셀포스 마을에서 약간의 정비와 주유를 하고나서, 지도상에 보이는,

산들을 관통하는 1번 도로를 통해 레이캬비크로의 귀환을 시도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커질대로 커져버린 눈폭풍은 1번 도로를 폐쇄해버렸고

중간중간 1번 도로로 향하는 길엔 아이슬란드 경찰들이 출입을 막고있었다.

하는수 없이 우리는 남쪽으로 크게 돌아 34번 도로 및 427번 도로를 이용해 복귀할수 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강한 눈보라와 바람이 예보되어있는 지역이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차에서 얼어죽거나, 레이캬비크로 돌아가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셀포스 마을에서 짧은 휴식 후 어떤일이 있어도 오늘 안에 레이캬비크로 돌아가자고 협의했는데

더 이상 투어를 진행하는건 위험하기도 했고, 그들 부부에게도 점점 민폐를 끼치는것 같아 송구했다.

그렇게 다시한번 의기투합한 모습으로 

이젠 투어가 아닌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써 레이캬비크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레이캬비크로 돌아갈때는 날씨가 점점 괜찮아졌고

예보되었던 눈보라는 우리를 비켜나갔다.

다만 바람이 엄청 세게 불었는데, 주행중인 차량이 크게 흔들릴 정도였다.

저녁 7시 무렵, 서서히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고

중간중간 버려진 차들을 보며 위기감도 느끼며 

마침내 우리 일행은 밤 아홉시가 다 되어서야 레이캬비크에 도착했다.

꼭 열세시간만에 다시 온 레이캬비크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평온했다.


우리는 돌아오며 서로 이런 우연한 기회에 동행한것과, 잊을 수 없는 여행에 대한

흥분과 설레임 그리고 감사와 송구. 그런 감정들이 뒤섞이며 

오늘의 여행에 대한 서로의 무용담들을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그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호텔 밖을 나섰다.


수 천마일 떨어진 이 곳에서 받았던 호의를,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그들 부부에게 이 날 받았던 호의를 꼭 보답하리라.




어제 러시아에서 보내온 택배를 받았다.


이 물건이 무엇일까.


이제 알아보자.




취미로 사진을 찍으면서 이것저것 어깨너머 배웠던것 중에 하나는

후보정이라고 불리는 절차 - 즉 라이트룸이나 포토샵등 프로그램들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같은 사진이라도 후보정을 하면 그 분위기나 주제 등이 달라지는 마법을 보며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 이런 후보정 프로그램들을 거치는것은 사진을 찍는 행위가

단순히 셔터만을 누른다는것에서 끝난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사실, 필름시대에도 암실에서 버닝이나 닷징 등 아날로그적인 보정 기술이 있었음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내가 충격을 받았던 브레송의 생 라자르 역 뒤에서 라는 작품 역시 필름 프레이밍이라는 

후보정 작업을 거쳐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는것을 생각한다면

단지 디지털 시대에 와서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그 범위가 크게 넓어진것이리라.





사진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배워본적도 없는 나지만

사진을 찍으며 나름 중요하게 생각하는것 3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어떤 사진을 찍을것이냐 하는 구상이다.

라이카의 뷰파인더로 바라본 세상은 수천가지의 경이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이 수천가지의 경이를 카메라가 아닌 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수천가지의 경이의 한 조각을 담는다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상황을 부여하여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구상.


가령


추운 겨울, 오후 네시가 넘어갈 무렵.

하늘은 맑고 햇빛은 나른한 그 빛을 온 세상에 뿌리고 있다.

더블린의 공원을 거닐며 눈으로 들어오는 수천가지의 모습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누구는 오리떼와 놀고있고, 누구는 손을 잡고, 누구는 조깅을 한다.

나는 라이카를 들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찍으시오(5점)"

그 순간부터 나는 이런저런 고민을 시작한다.

1. 어느 누가 가장 행복해보이는가?

2. 내가 찍기 편한 위치에 있는가?

3. 그들이 내 사진찍는것에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 위치인가?

4. 역광이진 않은가? (역광은 보정하기 참 어렵기에)

이런 고민을 하며 다시금 사람들의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면 아까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행복해 보이는 커플은 사실 사랑싸움을 하고 있었다던가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두 사람을 찍으려 보니 역광이라던가

그런 제약들을 아쉬움에 달래며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의도하는 모든 구성 요소가 하나의 화면 속에 들어오는것.

어려운 말로 미쟝센이라고 하는데 사진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용어 자체는 그렇다고 한다.

얼마간 공원을 배회하다 한 비둘기떼와 놀고있는 젊은 엄마와 아기가 보였다.

더 없이 행복해하는 표정과 적절한 빛의 노출 그리고 주변의 평화로운 소품(=비둘기들)까지.

내가 의도한 모든것이 그 장면속에 들어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라이카의 뷰파인더로 그 장면을 들여다보며 나름의 구도를 잡는다.


그렇게 더블린 공원에서 찍은 이 한 장의 사진은

오랫동안 내 콜렉션에 남아있다.






두번째는 어떠한 환경에서든 적당한 빛을 확보하는것이다.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정말로 말 그대로 적당량의 빛을 확보하는것만큼

사진의 품질을 결정하는데 있어 중요한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엔 빛이 없어도 스트로보니 고감도 센서니 하며 그 물리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지만

적어도 나와 라이카는 이런 환경을 극복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라이카 M9엔 코닥 CCD 센서가 들어가는데, 감도(ISO)한계가 고작 2500밖에 안된다.

이마저도 1600을 넘어가는 순간 노이즈가 끼게 되며 품질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주간에는 감도를 160에, 야간에는 320 이상 올리지 않고 촬영을 시도한다.

이런 한계는 야간에 촬영을 하게 된다면 삼각대를 필수로 지참하게 되었고

실내에서는 삼각대 없이도 셔터속도 1/15초 정도로 촬영하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햇빛이 쨍한 주광에서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는데

아무리 구형 카메라라도 주광에서는 요즘 카메라 못지 않게 이미지를 잘 뽑아낸다.

또한 생각외로 햇빛의 밝기는 어마어마하게 밝아서, 한낯에 촬영을 하게 된다면

조리개를 F8 이상 조이지 않는다면 셔터속도는 최소 500 이상으로 머물게 될것이고

이는 곧 사진이 어마어마하게 밝게 나오게 됨을 의미한다.

셔터를 눌렀더니 LCD 창이 하얀 모습만 보여주는 경우가 바로 이런경우이다.


각 카메라에는 측광센서라는게 붙어있어 카메라가 인식하는 빛의 양을 측정한다.

라이카의 경우 M6 모델부터 TTL 측광 방식을 이용하는데

(TTL : Through The Lens , 렌즈를 통한 빛을 받아들이는 양을 계산하는 방식)

내가 쓰고있는 M9 역시 TTL 측광을 이용한다.

즉, 카메라의 렌즈가 빛을 받아들여 이미지 센서에서

'아 내가 지금 얼만큼의 빛을 받아들이고 있구나. 주인아 참고해라'

하며 셔터 속도를 자동으로 조절해주거나 혹은 동그라미 세모로 빛의 양을 가늠해준다.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해질녘 사진을 찍을때 참 애를 많이 먹었다.

노을이 아닌 모습으로 해가 지평선에 걸려있으면서 빛이란 빛은 엄청나게 내뿜었으니

아무리 사진을 찍으려 해도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양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렌즈를 돌려 들어오는 빛의 양을 물리적으로 줄여버렸다.

최초에 내가 생각하던 사진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 사진은 몇달간 내 맥북의 바탕화면이 되었었다.




마지막 세번째이자 러시아에서 온 소포 이야기.


원하는 색을 얻으려면 화이트 밸런스를 잡아라.


요즘 플래그쉽 카메라들 (소위 전문가용 카메라들)을 안써봤기에 그들의 화이트 밸런스 잡는 솜씨는

잘 알 길이 없지만, M9의 경우엔 화이트 밸런스를 잡는 솜씨는 영 아닌듯 하다.

코닥 센서는 표현해주는 그 색상이 참 마음에 들었지만 그 색을 제대로 잡아내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었다.

보통 노출이나 조리계 등등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라도 화이트 밸런스는 오토로 맞춰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가끔 실내에서 촬영하고서

왜 음식 사진이 너무 누렇게 나오지?

혹은 사람이 너무 퍼렇게 나오지? 하며 갸우뚱 하는 일이 있을것이다.

이런 경우가 화이트 밸런스가 맞지 않아 생기는 문제들이다.


얼치기로 배운 화이트 밸런스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아침에 점심에 그리고 저녁에 걸어다니며 스타벅스를 지나친다고 하자.

스타벅스 로고는 아침이던 점심이던 저녁이던 사람 눈에는 녹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카메라의 센서는 녹색의 로고 색에 주변에 있는 빛의 색상에 의해 녹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주황색의 가로등 색을 받는다면 로고는 암갈색을 띄고, 파란 빛을 받는다면 청록의 색을 띄게 되는, 그런식이다.

이런 빛의 색깔을 다른말로 색 온도라고 하는데, 흔히 컴퓨터 모니터에서 설정할 수 있는 바로 그 녀석이다.

색 온도의 단위는 캘빈(K), 그리고 통상 그 범위는 2000에서 10000까지 인데

2000으로 갈수록 점점 붉어지고, 10000으로 갈수록 점점 파랗게 된다.

통상 태양빛은 5500에서 6000 인데,  한 낮 기준으로 6000캘빈 정도 색온도를 잡고 촬영을 하면

사람이 보는것과 유사한 색상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카메라별로 자동 화이트밸런스 설정 외에도 각종 환경 (백열등, 흐린날, 맑은날 등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이트 밸런스 설정이 있는데 이는 사전에 정의된 캘빈값을 적용해 사진의 색상을 보정하는 기능을 한다.


예시) 음식점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노란색(붉은색) 조명들이 대다수이다.

이럴 때 화이트 밸런스는 어떻게 맞춰야 하는가?

-> 차이는 있으나 3000에서 4000 사이로 맞춰 찍으면 누리끼리한 사진 대신 꽤 볼만한 사진이 나온다.




얼치기로 배웠던 이론은 위와 같았지만 이를 실제 촬영에 응용을 하려니 꽤 난감한 일이었다.

실외/실내/날씨/광량 등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나 많기도 하거니와 

대충 빠르게 찍고 라이트룸 등으로 보정을 하려 해도 내가 딱 원하는 색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검색을 하던 중 CBL (Color Balance Lens) 렌즈라는 녀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촬영 현장 광원에 대한 색상 정보를 24비트 1670만 픽셀로 7200여개의 색상을 연속 스펙트럼으로 만들어

원색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카메라 악세사리라고 한다.

용도별로 60mm, 85mm, 110mm, 200mm 가 있었다.

출시 초기 가격은 290,000원이라는 무지막지한 가격이었는데

당시 구입한 사람들 평은 원가는 2000원도 안할것 같은데... 가 다수였다.

그런데 이거 러시아 제품이냐고?

아니 이거 한국에서 만든거다.


(펄-럭)




(앞. 집광렌즈와 믹스보드, 반사보드로 구성되어 있다.)


(뒤. 스트로보를 사용할 때 사용한다고 한다.)


메이드 인 코리아. 없던 애국심도 막 솟아난다.

그런데도 왜 이걸 러시아에서 택배로 받았냐면

싸.니.까.

이베이에서 저걸 40달러에 팔고 있었으니까...

세상에 29만원 주고 저걸 사라고 했다면 

김선달이 대동강물 팔다가 뒷목잡고 쓰러졌을것이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카메라의 화이트 밸런스를 '수동' 으로 하고 CBL 렌즈를 한번 촬영하면

그 사진을 기반으로 촬영장의 화이트 밸런스를 잡아주는 식이다.

단, 촬영시에 초점은 맞지 않아도 되지만 빛의 각도와 촬영 면적의 70% 이상이 렌즈여야 정확한 값을 얻는다고 한다.


(찰-칵)

이 과정을 정상적으로수행한다면

저렇게 LCD 창에 화이트 밸런스를 잡았다는 문구가 나온다.


그렇다면 그 결과물은 어떨까.


사용 전. 화이트 밸런스 오토 (방 환경 : LED 주광등)


사용 후. 화이트 밸런스 사용자 모드 (CBL, 방 환경 : LED 주광등)


이렇게 대략 색상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한다.


M9의 경우 실내 촬영시 오토 화이트 밸런스 기능은 쥐약에 가깝기 때문에 그간 실내촬영을 꺼렸었다.

그러나 CBL 렌즈 영입후 원색에 가까운 색을 낼 수 있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아직 실외 촬영에서 사용은 제대로 해보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결과물을 보니

상당히 인상적인 색상 균형을 이루는것을 볼 수 있었다.

원색을 향한 욕심에 CBL 렌즈까지 들이게 되었지만, 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내가 좋아하는 사진만 찍을 수 있다면야.




들어가며.

오늘도 음악은 꼭!!! 꼭!!! 꼭!! 들어주면서 리뷰 읽어줬으면 감사하겠습니다!




3화

레이캬비크


블루라군 클리닉에서 수도 레이캬비크로 가는 날.
전날 목격했던 오로라의 흥분이 채 가시기 전에 우리는 그레이 라인 버스에 올랐다.
블루라군 클리닉에서 다음 목적지였던 레이캬비크의 힐튼 호텔까지는 대략 한시간여분 거리.
레이캬비크로 가는 길은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왔던 길과 비슷했다.


눈과 얼음 그리고 화산암이 끝없이 펼쳐지는 도로는 비슷했지만
이번 길은 중간중간 북극해를 볼 수 있는 코스가 있었다.
북극해
아파트만한 고래떼가 돌아다니고, 북극곰이 바다코끼리 사냥을 하고
깊은 바닷속에선 미국과 쏘련의 잠수함들이 신경전을 펼치는
그야말로 남자의 바다가 아니던가!
아이슬란드가 서기 800년쯤 세워졌으니
천년전 그 바이킹들은 대체 어떻게 이 험한 북극해를 뚫고 이 곳으로 왔을까.
작은 배를 타고? 고무보트를 타고? 핵잠수함을 타고?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더니
옆에 있던 지인이 또 시작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핵잠수함과 흰수염고래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라는
다소 치기어린 상상덕에 한시간의 여정은 금방 끝이 났다.
멀리서 보는 호텔은 그다지 멋지지 않았다.
으레 특급 호텔쯤 되면 건물도 휘향찬란하고 들어오는 이들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북유럽 감성을 바께쓰로 퍼다 부었는지 맨 처음엔 이곳이 호텔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http://www3.hilton.com/en/hotels/iceland/hilton-reykjavik-nordica-KEFHFHI/index.html
대략적인 호텔 소개. 세일 기간에 예약을 해서 1박에 220유로 정도 했다.
리셉션 데스크에는 토르를 닮은 (진짜다) 직원이 나를 응대해줬는데
키가 대략 2미터쯤 되었던것 같다.
솔직히 정말 쫄렸다.
그가 나에게 여권과 종이를 내어주며 여기저기 사인하라고 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호텔에 체크인을 하는지
아니면 저 북극해에서 크릴새우를 잡는 어선에 팔려가는 동의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행히 난 살아남았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는 라운지로 올라와 그간 마시고 싶었던 스프라이트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레이캬비크엔 눈이 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작은 얼음덩어리들이 눈하고 섞여 떨어지고 있었다.
대략 눈으로 가늠했을때, 저 당시 적설량은 5센치 정도 되었는데
이 곳 사람들은 아무일도 아닌마냥 차를 몰고 다녔다.
누가 그랬던가?
아이슬란드에선 차가 출고될 때 기본적으로 스노우 타이어가 장착된 채로 나온다고.
일리있는 말이었다.


라운지에서 허세도 적당히 부렸고
그간 하지 못했던 인터넷을 적당히 즐길 무렵
지인이 나를 부르더니 잠시 회의를 하자고 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여행인데, 장이라도 좀 봐야하지 않을까?"
사실 나는 그다지 내키진 않았다.
이 곳 물가를 알기에 아무리 저렴한 마켓이라도 무진장 비싸겠지.
그랬기 때문에 한국에서 올 때 비상식량이며 이것저것 챙겨온 나는
지인의 말에 토를 달았다.
"아니 거 블루라군에서 호되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차렸소?"
"야 아니야 여기 마트는 한국보다 싸다고!"
"네?"
그는 나에게 네이버 카페를 보여주며 영업을 시작했다.
보너스 마트. 우리로 따지면 이X트 에브리데이 같은 슈퍼마켓인데
하나같이들 비싼 아이슬란드 물가에서 한줄기 구세주와 같았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보너스 마트에서 어떠한 커미션을 받았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와 지인은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차로 대략 4-5분 정도 걸리는 길이었지만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그리고 온갖 신호등에 걸려 대략 30분은 걸었던것 같다.
그리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는가?
나는 가는 길에 열심히 라이카의 셔터를 눌러대었다.

횡단보도 중간에 서서. 저 멀리 레이캬비크 만과 설산이 보인다.

주차는 대략 이렇게.

거리를 걸으며. 
보도블럭에 검은 화산암 가루 비슷한게 있는게 신기했다.

걷다가 어느 집 앞에서.
이 사진은 몇달간 내 맥북의 바탕화면이 되었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건물들.
단열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왜 레고가 북유럽에서 나왔는지 대략 이해가 갔다.
이건 진짜 실 사이즈 레고가 아닌가!

길을 걸으며 지인은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야! 좀만 더 걸으면 거긴데 갈래?"
"어디요?"
"아 왜 있잖아 그 교회. 발음하기도 어려운거"
"hallgrimskirkja 교회요?"

할그림스키르갸 교회.
새뮤얼손이 1937년 디자인해서 1945년부터 1986년까지 꼬박 41년에 걸쳐 건축된
아이슬란드에서 여섯번째로 큰 건축물이자, 가장 큰 교회라 한다.
17세기 아이슬란드의 시인이자, 왕이었던 할그뤼머 피퉈손의 이름을 따 붙였다고 하는데
사진에 나온 저 동상의 인물은 할그뤼머 피퉈손이 아니다.
저 동상의 인물은 10세기 아이슬란드의 탐험가인
레이프 이릭손의 동상이다.
즉, 교회의 이름과 그 앞의 동상은 전혀 별개의 사람이니 헷갈리지 말자.
여튼.
마치 로켓을 형상화한듯한, 그리고 쓸쓸한 아이슬란드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콘크리트 건물로 
명실공히 아이슬란드의 랜드마크였다.
저 멀리서 바라보며 걷다가, 막상 수십미터 내로 접어들자 탄성이 절로나왔는데
건물의 규모도 규모이지만 그 웅장함이 대단했다.
나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탄성을 질렀다.
아니 마음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내부에선 조용히 하란다.
이 오르간은 독일의 오르간 제작자 요하네스 클라이스가 1992년에 만들었는데
그 크기로는 15미터에 달하고 무게는 25톤이라고 한다.
나는 태어나서 저렇게 큰 파이프 오르간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저 오르간은 관상용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번 시간을 정해 연주가가 직접 연주를 한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때에는 막 연주가 끝나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쉬웠다.
다음에 다시 레이캬비크에 온다면 들으리라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앞에 제단에는 소박하지만 웅장한 제단이 꾸며져 있었다.
마치 이케아에서 제단을 만든다면 딱 저런 느낌일것이다 하는 것들이 놓여져 있었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성당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난 뒤 나가는 길에 오르간 연주자의 연주를 담은 CD를 팔고 있었다.
2500 크로나 (2만5천원)
안녕 CD..
그렇게 이제 정말 보너스 마트로 가려는데 지인이 다시 나를 불러세웠다.
"야 여기까지 왔는데 그거 먹어봐야하지 않을까?"
"또 뭔데요? 크릴새우요?"
"핫도그"
"아!"
꽃청춘에서 나온, 빌-클린턴 아저씨가 좋아한다는 그 핫도그 맛집!
번역기를 잘못써서 핫도그 세 개를 핫도그월드 라고 번역해서 모두를 빵터지게 만든 그 녀석.
지금 만나러 갑니다.

는 1.6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눈보라 치는 거리를 우리는 벌써 한시간 넘게 걸어다니고 있었는데
진실로 의지의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무리였을것이라 자부했다.
길을 걸어가며 새삼 느낀건 역시 차보다 사람이 먼저였다는것이었다.
사람이 튀어나오면 빨간불이던 파란불이던 일단 멈춰서고 기다렸다.
그렇다고, 시민들은 천방지축으로 무단횡단을 하지도 않았다. 신기했다.

터벅 터벅 발에 채이는 얼음을 튕겨내며 드디어 가게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명소 아닌 명소처럼 되어버린 이 가게에 줄을 서고 핫도그들을 먹고 있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자 저기 서있는, 이 핫도그집을 하지 않았으면 빙하타고 북극곰하고 맞짱떠도 할말없을것같은 
우락부락한 아저씨가 내 주문을 받았다.
나는 동양에서 온 신사 답게 핫도그를 주문했다.
"Two hot dogs please!"
내 짧은 영어를 못 알아들을까봐 브이자까지 그리면서.
그 아저씨는 씨익 웃으면서
"Everything?"
이라고 했다.
에브리띵 ; 모든것.
대체 뭐라고 하는거지. 모든것이라니? 아! 주문이 다 끝났냐고?
"Umm nope, add two cokes please!"
그렇지! 핫도그엔 콜라가 어울리지!
가게에 떡 하니 코-크의 사진을 걸어놓은걸로 봐서
이 장사를 잘 하는 사람들은 특유의 인상(!)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아 낯선 관광객들에게 
코-크 끼워팔기를 시도하는게 아닌가!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아저씨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 아무래도 코-크 와의 거래가 어제부로 끝나서 그런가 보다.
뭘 시켰어야 했나. 스프라이트? 안돼 이미 두 캔을 호텔에서 마시고 왔는데!
왤까.. 왜.. 대체 왜... 아재요... 이러지 마세요..
그 아저씨는 나를 보고 씩 웃더니 능청스럽게 코-크 캔 하나를 핫도그 빵에 끼워넣으려 했다.
그순간 난 깨달았다.
에브리 띵은 주문을 다 했느냐가 아니라 '토핑'을 말하는것이였음을...
 "NOOOOOOOOOOOOOOOOOOOOO"
.
.
.
이 집 핫도그를 먹는다고 한다면
그냥 맘 편하게 에브리띵을 시킬것.
의문을 제기하지 말 것.
아저씨에게 농담도 걸지 말 것
그러다가 니 멘탈이 갈려나갈 것.
아무튼
에브리띵으로 핫도그를 주문하면
핫도그 빵 + 소시지 + 양파튀김(매우중요 별표 3개) + 갈색 소스(매우매우중요 별표 네 개) + 하얀소스
이렇게 매우 간단하게(?) 해서 건네준다.
형상은 이렇다.

맛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단지 저 자리에서 여섯개쯤 먹었을 무렵 
이제 그만먹어야하지 않겠냐 라는 지인의 말에 정신이 들었을 뿐.

화서 이항로 선생께서 양이들과 통교를 할 적에 그러셨다지
"실로 서양의 문물은 백성들을 혹사무민하고 나라의 국고를 탕진하게 하니
그 해악이 천하를 이르는데 어찌 그들과 통교하여 국가의 재물을 낭비하겠는가?"
만약 이항로 선생께서 살아계셨다면 이 핫도그를 드시라고 권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당장에 아이슬란드하고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을것이다.




핫도그 집에서 적당히 배를 채우고 나오는 길.
원래 목적지였던 보너스 마트와는 30분은 더 걸어야 했다. 망할.

우린 그제서야 왜 대중교통을 타고다니지 않는지 갑론을박을 펼쳤다.

그러나 이내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모여있는 기념품 샵들이 줄지어 서있는 거리에 들어서자

어느새 그랬냐는듯이 이리저리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이 때 사진들을 못찍은게 아쉬웠다.

저렇게 예쁜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었는데!

그림이라도 그려서 보여주고 싶지만 여백이 부족하여 보여주지 못할것 같다.


 드디어 마트에 들어온 우리는 생각보다 저렴한 물가에 다시한번 놀랬다.

리뷰를 남겼던 사람들이 커미션을 받았을거란 되도않는 추측은 날려리기에

보너스 마트 안에 물건들 값은 매우 착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인건비가 비싸서 사람 손 타는 것들은 무진장 비쌀거라고.

실제로 그랬다.


두 줄에 2만 5천원 하는 김밥도, 그것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의 인건비가 들어갔기에 

그렇게 비쌌던것이었고, 빵 한봉지 300크로나 (3천원), 코-크 1.5리터짜리 130크로나 (1300원)

그리고 소시지 30개에 550 크로나 (5500원) 으로 왠만한 육가공품 혹은 육류는 한국보다 저렴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뿐만 아니라 왠만한 현지인들도 이 곳에서 장을 봐서 가는듯 했다.

이날 크래커와 소시지 그리고 음료수 등등 한 봉다리의 가격은

2176 크로나.

나중에 2만 천 얼마 해서 결제되었다.


그렇게 나는 북유럽 물가 별거 아니네~ 하면서 룰루랄라 하며 호텔로 들어갔다.

물건이 모자라면? 길 가다 마트에서 하면 되겠지 하고 말이다.

그땐 몰랐다.



앞으로 어떤 것들이 내게 펼쳐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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